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구스타브 1세 바사 (문단 편집) == 스웨덴 독립 전쟁 == [[달라르나]]에 도착한 구스타브 바사는 지역 농민들에게 크리스티안 2세의 학살을 알리며 봉기를 유도했다. 그러나 수도의 소식을 알리가 없던 농민들은 뭔 헛소리냐며(...) 구스타브 바사를 무시했고 이에 실망하여 [[노르웨이]] [[국경]]으로 도주했다. 그가 도망치고 나서 달라르나 농민들은 [[스톡홀름]]에서 난리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고 이에 농민들은 노르웨이 국경 코앞에서 그를 붙잡아 달라르나 지역 사령관으로 추대했다. 구스타브 바사가 긁어모은 농민병들은 덴마크의 압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만으로 모였고 구식 무기에 훈련도 못받았지만 소수의 [[덴마크군]]을 위협하기에 충분했고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구스타브 바사가 주도로 일어난 농민병들의 소식을 듣고 스웨덴 다른 지역에서도 봉기가 일어났고 스톡홀름과 일부 성채를 제외한 대부분을 탈환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스톡홀름은 농민병들만으로 함락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어 구스타브 바사는 다시 뤼베크로 건너가 뤼베크 시의원들을 설득해 데려온 [[용병]]들과 함께 탈환했다[* 이때 구스타브 바사가 독립을 위해 뤼베크까지 갔던 노력을 기려 뤼베크 시청사에는 구스타브 1세 바사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한편 크리스티안 2세는 스웨덴에서의 실패와 평소 덴마크 귀족들과의 불편한 관계로 인해 덴마크 왕위에서 폐위당했고 노르웨이에서도 연달아 폐위당해 처가가 있는 [[합스부르크 네덜란드]]로 망명했다. 덴마크 왕위는 크리스티안 2세의 숙부인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공작(작위)|공작]] [[프레데리크 1세|프리드리히]]에게 넘어갔고 스웨덴 신분제 의회는 새로운 덴마크 국왕 프레데리크 1세가 스웨덴 왕위를 주장할까봐 새로이 [[스웨덴 국왕]]을 선출하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1523년 6월 6일 [[스트랭네스]](Strängnäs)에서 열린 의회에서 구스타브 바사는 스웨덴 국왕으로 선출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